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유럽축구 확대경]박지성, 당신이 자랑스럽습니다

주인작업실/스포츠뉴스

by 윤기영 2008. 5. 13. 16:28

본문

                                                                           [유럽축구 확대경]박지성, 당신이 자랑스럽습니다
 
 

[이데일리 SPN 임성일 객원기자] 2006년 월드컵 때의 일이다. 현지에서 만난 독일인에게 안정환을 아느냐고 물었다. 당시 안정환의 소속이 분데스리가 뒤스부르크였기에 내심 긍정적인 답을 기대했었다. 그런데 상대가 이내 고개를 가로젓는 바람에 꽤나 머쓱했던 기억이다.

하지만 더 놀랐던 것은 이어진 대답 때문이다. " 차붐은 안다 " 근 30년 전에 이름도 낯선 아시아의 대한민국에서 날아온 선수의 이름을 지금껏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차범근이 남긴 인상은 그만큼 또렷했고, 덕분에 차두리는 '차범근의 아들'로 통하고 있었다. 차범근은 그런 선수다.

1980년대 세계 최고의 리그였던 분데스리가에서도 최고의 외국인 플레이어로 극찬 받았던 이가 바로 차범근이다. 프랑크푸르트와 바이에르 레버쿠젠 소속으로 각각 UEFA컵 정상을 경험했고 은퇴할 때까지 308경기 98골이라는 발자취는 오래도록 분데스리가 외국인 최다골 기록(현재는 브라질 에우베르의 133골)으로 남아있었다.

요컨대 차범근은 분데스리가를 통틀어 '에이스'급 활약을 펼쳤던 인물이다. 2004년 독일대표팀을 이끌고 한국을 찾았던 클린스만 감독이 기자회견 도중 냉큼 일어나 차범근을 반긴 것은 가식적이거나 형식적인 치레가 아니었다. 차범근은 대한민국 축구사에 응당 자랑스러운 인물이다.

2007년 아시안컵 때의 일이다. 인도네시아에서 대표팀 훈련을 지켜보고 있는데 한 현지인이 다가와서 물었다. " 박지성은 없습니까? " 당시 박지성은 부상 때문에 대회에 참가하지 못했다. 이런 정황을 전달하니 박지성을 보기위해 훈련장을 찾았다던 그 팬의 얼굴에 서운해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비단 인도네시아 뿐 아니라 동남아에 있는 축구팬들에게 박지성은 그야말로 슈퍼스타에 가까웠다. 인접한 아시아 국가의 선수가 잉글랜드에서, 그것도 맨체스터유나이티드라는 빅 클럽에서 활약하고 있다는 사실에 일종의 대리만족을 느낀다고 했다. 마치 우리가 크리스티아노 호날두나 리오넬 메시, 카카를 보면서 생기는 동경 같은 것을 박지성을 보면서 느끼고 있는 것이다. 박지성은 이미 그런 존재였다.

2000년대 세계 최고의 리그로 평가되는 프리미어리그, 그리고 그곳에서 최고의 클럽으로 꼽히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소속으로, 그것도 당당히 우승에 기여하는 중요한 플레이어로 환호성을 올리는 박지성을 보고 있자니 새삼 대견하고 자랑스럽다는 느낌이 들었다. 꽤나 심각한 부상과 수술, 그리고 힘겨운 재활을 이겨내고 아무렇지 않게 당대의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의 능력과 노력이 요구되는 일이다.

누군가의 휴식을 주기위해, 전체적인 로테이션 시스템을 위해 박지성이 기용되고 있다는 일각의 폄하가 있으나 이는 퍼거슨급 되는 명장을 무시하는 발언이다. 프로 중의 프로들이 살고 있는 무대에 이런 지레짐작은 어울리지 않는다. 박지성의 수준은 달라졌다.

물론, 아직까지는 박지성을 차범근과 견주기 어려울 수 있다. 언급했듯 1980년대 분데스리가는 지금의 프리미어리그처럼 부와 명예와 실력이 집중된 무대였다. 그리고 차범근은 그 속에서도 빛나는 별이었다. 판을 접수했다고 칭해도 무방할 활약상이었다. 따라서, 냉정히 말해 맨체스터Utd.에서도 확실하게 주전을 꿰차지 못한 박지성을 차범근의 그것과 비교한다면 아직 모자란 부분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 박지성 역시 응당 대한민국 축구사에 자랑스러운 인물이 됐다. 프리미어리그 2연패를 경험한 한국인. 섣부르고 조심스러운 말이지만 앞으로 또 이러한 인물이 가능할지도 의문이다. 뿐이랴. 박지성의 맨체스터Utd.는 '꿈의 무대'라 불리는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진출해있다. 한국은 물론이요 아시아 출신 선수로서는 최초의 일이다. 참 벅찬 일이다.

여전히 축구의 변방인 대한민국의 플레이어가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을 들고 함박웃음을 짓는 장면. 충분히 설레는 일이고 꼭 성사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지성은 이런 선수다. 동시대에 살면서 그의 플레이를 직접 지켜볼 수 있으니 우리도 퍽이나 행복하다. / < 베스트일레븐 > 기자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