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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류장

주인작업실/메일 편지

by 윤기영 2006. 12. 14.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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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류장 


                                                            이유희



가을이 짙어지고 있다. 가을 속으로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이다.

여행은 삶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자기 성찰이자 바쁜 삶을 잠시 쉬어가는 여유다.

하지만 떠나고 싶다고 떠날 수 없는 것 또한 우리들의 삶이다.

사람이 태어나서 사는 동안 어떻게 살다가야 잘 살고 갔다고 하는 걸까.

 

어제 남편 친구 아내의 문상을 다녀왔다.

남편보다 8살이나 나이가 적은, 아직은 하늘의 부름을 받지 않아도 될 나이다.

짧게 살다 간 망자의 한 맺힌 삶이 내 가슴을 사금파리로 그어대고 있다.

 

그녀는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오빠들 밑에서 자라 여고를 졸업하던 해에

집을 나와 떠돌이 아닌 떠돌이가 생활을 했다. 그러다가 다방과 술집에 흘러들었다.

화류계를 다니다 결핵을 앓게 된 다음에야 그 곳으로부터 탈출하였다.

남편 친구와는 이즈음 만나게 되었는데, 그녀의 과거는

어둠 속에 묻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결혼하여 살다보니 결핵이 심해 완치 될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업소에서 끝까지 행방을 찾아 왔는지 갑자기 들이닥쳐

몸값을 요구해 어둠 속의 시간들이 밝혀졌다.

 

2주 전 만나 삼겹살을 구워 맥주 한 잔 하면서 떠들던 우리였다.

가벼운 감기를 쇠잔한 몸이 이기지 못하고 영원히 못 올 곳으로 가버리고 말았다.

자기 몸 하나 가눌 수 없는 힘든 상황에도 아이를 임신해서 겨우 딸 하나를 남겼다.

힘든 삶의 여정에 남편과 딸이 전부였던 그녀다.

이제 9살 된 엄마 닮은 예쁜 딸을 두고 어떻게 먼 길 떠날 수 있었는지…….

뭐가 급한지 종종 걸음으로 이승을 떠나갔다.

어찌 보면 왔다 가는 이 이승이 순간의 바람 같은 것은 아닐까.

바둥거리며 산다고 더 행복한 것도 아니고 오래 사는 것도 아니다.

잠시 머물다 가는 정류장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따뜻한 마음을 공유하고,

나 혼자가 아닌 남을 위해 사랑을 베풀고 자신을 인내하며 진실한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잠시 머물고 있는 정류장에 앉아 지나간 삶의 여정을 그려본다.

육신이라는 영혼이 담긴 인생 가방을 꾸려 여행을 떠난다.

인생의 참된 삶을 찾아 긴 여행을 떠나야 함은

이승을 떠나는 날 얼마나 성실하게 살았는가에 대한 물음이다.

 

그녀의 영정 앞에서 이별을 하며 나 자신을 발가벗고 눈물 한 웅큼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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