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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아차산 문학상 수상자 시상식에서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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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기영 2023. 11. 25.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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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아차산 문학상 수상자 시상식에서 발표


대상_전양우
금상_윤종남
은상_안정호
동상1_홍시율
동상2_권시림
동상3_박봉철


대상 수상작_전양우(서울)


1.아차산의 아침


냇물은 씻고 씻어 맑게 하고
양파처럼 허물을 벗는 하늘은 점점 푸르다
안개는 입고 입어도 부담스럽지 않다
검은 소나무들 알통 자랑하느라 들썩들썩
바위 속에 꿈틀대는 고구려의 마음 맥박으로 전이된다
영화사 뜨락에 흐르는 독경이 말발굽 소리를 온몸에 전한다
중랑천과 왕숙천을 좌청룡 우백호 삼고
한강을 중군장으로 아차산은 진군한다
나무들 북을 치며 환호하고
잡초들 열광 속에 달려간다
구리 벌판은 심장을 더 뜨겁게 달군다
고구려는 생태습지에 왕숙천의 포부를 넘치게 부어
대장간 마을을 풀무질한다
삼족오는 구리한강시민공원을 모래밭에 낳는데
큰 눈을 붙인 보루들 눈망울에 가족의 행복이 낚시질 된다
어린이들은 나비의 숨소리로 알록달록 산을 만들고
어디선가 동서양 젊은 꽃들이 피어난다
어느 곳인가 풍물들 애환을 숙성한다
부드럽게 휘어지는 아차산 입
하얗고 금빛 나는 목소리


2. 살아있는 묵빛군단


높이 세운 깃발 태양마저 올올 붙들고
흑빛 위풍 갑주마다 넘치는데
평지인 듯 거침없는 군마들의 질주
종횡무진 활공하는 삼족오떼 사시사철 부리부리
질풍은 산밑까지 떨어지는 명령
온산 덮은 군세 산사태로 쏟아진다
위압스런 호통 산천은 떨고 진군나팔 활개친다
밤에도 부릅뜬 눈빛 날이 서 있다
소나무만 빽빽하게 키우는 수천년 세월
한몸에 꿈틀거리는 투박한 뿌리들
낙엽들 켜켜히 쌓여 의기를 운집한다
창검처럼 날을 세운 솔잎들
천지가 단풍 들어도 막무가내 서슬 푸른 산악


3. 산에 사는 온달


여기는 약사여래불 참오하는 기원정사앞
노란 연꽃들 두셋 공자왈맹자왈
구불렁거리던 한강 움찔움찔 역사를 되돌아 온다
괜히 왔다리갔다리하는 장수왕을 해돋이에서 만난다
성책을 높이 세운 자는 내려다보는 재미를 알지만
선거철 찌라시는 언제나 화장발이 쎄다
반팔 입은 등산객 앞에 불쑥 나타난 온달
명예는 뒷주머니 찔러넣고 보따리만 불퉁
웃음 조각 하나 매어둔 건 꼬리 자른 침묵에 대한 답변
발전하지 못한다고 무능력하진 않지만
넉살의 지퍼를 열고 가슴까지 차오른 욕망을 쫌만 덜어낸다
으례 일상적인 일이다
씀바귀 김치가 시간의 멱살을 쥐락펴락
이젠 누가 쓴지 구별할 수 없다
돈을 빌려준 분이나 꾸어간 놈이나
태양에 모자를 기어코 씌워주겠다는 아저씨나
몇개 안 남은 치아를 마저 뺀다고 덤비는 촌놈이나



금상 수상작_윤종남(경기일산)


1 고구려정에 올라



이제 새로 비문碑文을 쓰려고 한다
한 자 한 자 읽어 내려가면
아리수 건너 백제 위례성의 함성이 출렁이고
고구려의 힘찬 말발굽 소리 들려오고
신라군의 항전 의기가 산 정상을 오르는
오직 이 땅을 차지한 나라가 아리수 주인이었던
토기 굽는 장작이 활활 타오르는 언어로
대도나 철촉, 삽날 등을 만드는 망치 소리로
치열한 쟁패를 다투는 함성으로
때로는 사시사철 바람을 읽느라
한 문장 한 문장을 완성하면서
한 시대의 기록을 남기려 한다

한성 백제의 도읍을 마주한 곳
덕양산, 관악산, 북한산과 함께 한양의 바깥 고리를 채우고
낙산, 인왕산, 남산, 북악산으로 이어
한양 도성이 세워졌으며
북서쪽으로 용마산이 있고
더 북쪽으로는 근심을 잊었다는 망우산이 있다
천 년도 훨씬 전,
치열하게 투쟁했던 고구려, 백제, 신라의 각축장
이 산세에 처음 산성을 축성한 백제
한강 방어선을 두고
아차산, 용마산, 망우산, 수락산까지
능선을 따라 빼곡하게 배치한 고구려 보루군
다시 신라 거칠부의 공격으로 손바뀜되기까지
광개토왕이 백제 아신왕을 꺾으면서 내려온 최남하지
장수왕이 개로왕을 살해한 곳도 이곳이고
고구려의 고토 회복 몸부림도 세 번이나 여기서 꺾였으니
온달, 고승, 뇌음신의 고함소리 들려온다

가장 단단하고 큰 돌에 이 사실을 새기려 한다
사시사철 꽃 피는 그 꽃 빛으로 새기고
서울에서 가장 먼저 해를 볼 수 있는
첫 해돋이를 보려는 마음으로 새기려 한다
뺏으려는 자, 지키려는 자들의 ​함성이 들리는 곳
아차산성 성벽을 따라
키 작은 소나무 숲 솔바람 따라 이 비문을 읽을 것이다
사철 고구려정에 올라 이 비문을 읽을 것이다
전문을 가을하늘 빛으로 옮겨 새길 것이다
마침내는 이 비를 기려
한강의 주인이 되는 날 춤을 출 것이다


2 대장간 마을


한때 이 땅의 주인이었던 고구려
아차산 제4보루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간이 대장간 터

시간을 거슬러 올라 아차산 고구려유적전시관에 들어서면 고구려 대장간 마을이 있다 회의 장소 거믈촌을 보았고 고구려 유민이 살았을 연호개체 보았다. 담덕 광개토대왕이 그 추운 겨울을 온돌로 몸을 녹였을 담덕채에서 온돌을 보았다 허투루 쓰인 문장과 단어가 없는 광개토태왕비를 읽었다 그리고 대장간으로 들어섰다

화로, 모루, 망치, 집게를 보았다 손잡이를 밀고 당기면서 바람을 내는 손풀무와 발로 밟아 바람을 일으키는 발풀무 쇠를 자르고 구멍을 뚫는 정(鉦), 달구어진 쇠를 올려놓고 두드려 모양 잡는 모루를 보았다

참나무가 탄다 잉걸불이 인다 청동의 시대에서 강철의 나라로 건너던 때 화로의 불이 치솟고 쇠를 달구고 쇠를 두드려서 투구와 찰갑, 창, 도끼, 화살촉 무기와 낫, 쇠스랑 등의 농기구와 재갈, 등자와 같은 말갖춤 도구들을 만들었다

귀가하는 전철 안에서 한겨울을 건너온 한강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진눈깨비가 차창에 어지럽게 휘날렸다 해 떨어지는 더 어둠 속으로 물속으로 빠르게 하루의 해가 저물고 있었다 저 능선 소나무 숲은 천 년 전 바람 소리를 기억하고 고요한 기다림으로 꼿꼿하게 서 있다

“왕의 은혜로움은 하늘에 미쳤고, 그 위엄은 사해(四海)에 떨쳤다. 나쁜 무리들을 쓸어 없애시니 백성들은 그 생업에 힘쓰고 편안히 살게 되었다. 나라는 부강하고 백성은 유족해졌으며, 오곡이 풍성하게 익었도다”*

눈이 내리는 아차산, 오래지 않아 눈은 그칠 것이고 이내 진달래 분홍 물결이 출렁일 것이다 거기까지가 대장간 마을이었다


* 광개토태왕비 비문 마무리 부분 인용.



3 보루군堡壘群에 지는 노을



아차산 보루군에 노을이 진다
백제 땅에서 고구려 땅으로
그리고 신라 땅으로 되기까지
숨 가쁘게 달려 나온 주 능선을 따라
목 좋은 곳에 축성된 아차산 보루들이
저 멀리 검단산과 남한산 일대를 조망하고
한강을 굽어본다
전초기지, 초병의 눈빛이 빛나던 곳
고구려 장수왕이 아차산성을 점령할 때도
온달이 성을 수복하기 위해 목숨을 바쳤을 때도
보루에는 봉홧불이 올랐다.
아리수를 사이에 두고 힘겨루기했던 백제와 고구려
백제 개로왕이, 고구려 온달 장군이 전사한 현장
적군을 막거나 혹은 공격하기 위해
흙이나 돌로 쌓은 진지
그 안에서 고구려민의 온돌이 나오고
토기와 도끼 등이 쏟아져 나온 곳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의 백제군을 지켜보았던
장수왕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소나무 군락이 펼쳐진 시원한 솔숲 사이
맥문동과 노루오줌의 야생화가 피어 있고
아차산성 너머 한강은 유유히 흐르고
바보온달과 평강공주의 동상만 말없이 서 있다
옛 산하, 보루군이 노을이 떨어진다
소나무 숲을 물들이고
한 사람이 젖은 마음이 그 숲길을 걸어 나온다



은상 수상작_안정호(인천)


1 보루의 북소리


보루의 북소리 들어보았나요
돌 두드리던 힘줄 모아 내리치는 주먹
찢긴 시간은 잎에 고막을 달아줍니다
영혼 없이 구르던 돌이 아차산에 박히면
비문을 쥐고 시루봉에 올라가는 사람
저 멀리 굴절된 비명이 중랑천을 파고들어요
참았던 기도가 한순간 터져버릴 때
울리는 것들은 다 북이 되는지 궁금해집니다
오래된 층층 돌판에 앉아봅니다
능선 옆구리마다 깃발이 둥둥 휘날리자
숲은 보루의 심장을 끌어안습니다
목책의 동맥과 정맥은 연결되지요
비로소 고구려의 붉은 호흡들 굽이굽이 지나갑니다
떡갈나무 정수리에 유예된 슬픔이 고입니다
보루의 등을 치던 그 많던 사내들은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요
부르지 않아도 달려갈 돌멩이가 저리 많은데
능선이 그날의 통증을 복기하면
산기슭에는 구멍이 왈칵 뚫립니다
아직 오지 않은 북소리에 모래가 쏟아집니다
웅크린 잡풀이 깨어나는 용암사
잊힌 몸을 읽어내는 풍경소리
부드러운 법음에 화답하는 연등의 묵언
끝내 마중하던 나뭇가지들은
어째서 두 손을 놓지 못하고 있습니까
광나루의 해진 잇몸이 저물어갑니다
서둘러 북소리를 땅에 묻어두어야겠어요
역사의 안부는 묻지 않기로 합니다



2 항아리와 척후병


여전히 몸을 말고 있는 저 항아리
금간 삶이 끝까지 지키려 했던 건 무엇이었을까
악착같던 시간을 버리기 위해
어깨에 매달린 두 귀는 더욱 깊어간다
당겨진 만큼 호흡은 가빠지고
최소한의 바람은 유언처럼 스치는데
보루 항아리는 왜 자신을 쏟아낼 줄 모르는지
전쟁의 글썽이는 눈은 얼마나 황량한지
무덤가를 배회하던 사람은 안다
땅속, 들을 수 없는 곳이라면
벌린 채 닫힌 입이 그렇게나 많이 들어 있기 때문
어린 척후병은 알기나 할까
짓이겨진 새가 밭은 숨 바위에 토한다
눈짓이 칼끝을 향하면 고향 어귀는 빠르게 도망쳤다
도착할 곳 없는 두 발을 붙들고
항아리 바닥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소년
그럴 수밖에 없는 말이 가득하구나
굴뚝의 그림자는 가장 먼 데 있었어
영영 끝나지 않을 포성이 소년의 입을 틀어막는다
한강을 굽어보는 산들이 봉우리 키워갈 때
항아리는 제 깨진 얼굴을 감춘다
틈새로 부는 바람은 기어이 붙잡고 싶은 것들
어느새 소년의 거뭇해진 턱은 작은 호주머니 같다
떠나던 날 누이가 꿰매준 옷섶을 어루만지며
곧 떨어질 별을 쳐다본다



3 보루와 돌탑 사이



돌탑은 누가 봐도 무너질 자세로 버티고 있다
힘으로 지금을 살아내면 살아진다
허리띠처럼 풀어진 저 길 너머
먼지 이는 죽음을 둘러업고 달려오는 한 여인
그녀 뒤는 어찌 그리 이야기가 많은가
잠시 머물던 곳마다 위태로운 소원이 남고
오래된 비명들은 창을 통과한다
뒤돌아보지 않아야 새벽이 오겠지
포대기 한껏 졸라맨 여인은 오늘을 해석하지 않는다
산바람이 어깨를 후려쳐도 순종해야만 한다
나뭇잎이 엿보던 모든 것들 떨어지고
고갯길 넘어가는 들꽃의 시간이 붉게 벗겨진다
널브러진 투구들이 돌탑에 새겨진 울음 듣고 있다
보루를 무너뜨려서 보루를 쌓는구나
저만치 두고 온 그리운 얼굴을 말하지 않는다
오지 않을 윤회를 꿈꾸며 산허리 지나갈 때
주머니 속 돌멩이가 가벼워진다
빈 언덕을 돌아가지 않는다



동상1_홍시율(서울)


1. 경계의 타락


산등성이를 따라 올려다본 하늘에
햇빛이 서서히 스며들고 있다
멀리서 확연하게 보이는 것들도
다가가서 보면 새로운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
정확하게 보려면 멀리서 봐야한다는 말과
가까이 가서 봐야 제대로 볼 수 있다는 말이
귀에 거슬렸다
모든 경계에 선을 진하게 긋는 습관들이
왜곡시키는
빛과 어둠의 교환지대
있음과 없음의 차이
때론 비와 햇빛이 만들어내는 모호함이
더 좋았다
옳음과 그름의 경계에는 그 말을 만든 사람들의
저주가 녹아있었다
알맹이도 오래 되면 껍질이 생겨난다
자기 선택에 대한 고집 때문에 얽매이는
경계의 타락은
누군가를 슬프게 한다
우리는 언제나 착시 속에서 만난다



2 아차산을 내려오며



자유의 덕목은 비움이라고 말하는 나에게
아내는 성취라고 강조한다

산을 오르는 일과 내려가는 일이
같은 길이지만 다른 심상이듯이
올라갈 때 쳐다보는 한 곳과 내려갈 때 바라보는 여러 곳은
갈망과 여유의 차이점이다
목표한 곳을 도달한 사람이나 중도에서 내려오는 사람이나
홀가분하게 모든 걸 털고 오는 중이지만
많이 비우기 위해서는 많이 채워야 하는 역설

아내는 능력이 최고라고 말하는 반면
나는 안전이 우선이라고 말한다

모험 한 번 못해본 삶이 의미가 있느냐는 물음에
당신이 내 모험 아니었냐고 되받는다
울기에도 웃기에도 애매한 삶의 능선들
먼 길을 가기 위해서 오래갈 수 있는 길을 찾는 이치
모두에게 중요했기에 치열하게 이곳 아차산을 원했으리라
개인이 감당하는 자유에도 우선순위가 있고
시간의 적절한 안배도 뒤따라야 한다

모두가 한 곳을 바라보며 달려 나갈 때
그러고 싶지 않았던 순간들
나의 자유는 균형 잡힌 것이었을까
위에서 바라보는 도시 풍경은 늘 불편하다

비움에도 자격이 있다는 듯이
바위의 나지막한 가파름이 부담스러운 오후



3 소화기 사용법



모든 소화기는 왼손잡이용이다
앞에는 계기판을 붙여야하기에 핀은 뒤쪽으로 밀려났으니까
가치가 생활보다 앞서도록 적응해왔던
예쁘고 잘생긴 아들을 카트에 올려놓아야 속이 편한 자존감
행복은 스스로 지치기도 한다
느긋하지 않기에 게으르지 못하기에

사용하고 싶은 손을 사용하게 하세요
평소에 순서를 눈여겨보시고
통째로 불 속에 던져 넣지는 마세요
튜브는 편한 손으로 꼭 쥐시고
필요한 만큼씩 끊어서 사용하세요

끈다는 것은 위험하고 과도한 것을 차단하는 일이다
잘못된 마음의 불을 가라앉히는 일도
느닷없이 터져 나오는 울분을 다독이는 일도
그 소화기의 용법에 맞게 어법에 맞게
호통소화기보다는 사탕소화기를
정 줄게 없으면 안아주고

모든 소화기는 왼손잡이용이라는 것
수류탄이 아니니까
오른손잡이가 겁내고 주눅 들지 않도록
불안의 핀을 미리 뽑아내 주세요
필요할 때 제 몫을 하지 못하는 장식들
인류가 만들어놓은 생의 도구들인데
누구에게 보여줄 일도 전시할 일도 없는
그런 소화기가 넘쳐나면 바뀔 수 있는 그 무엇들




동상2_권시림(논산)



1 보루군, 옛터에서


탑 하나 온전히 세우지 못한 백골이
흙이 된 문자들이 있다
가슴에 깊숙이 파고든
떨쳐낼 수 없는 문장들이 있다
허물지 못한 흉터로 남아있는 보루에
침입의 흔적 역력한데
격전의 혈투에 사내들 들끓었을
가파른 능선에 내려앉은 직박구리
떨구고 잃어버린 밀서를 읽는 걸까
사방을 경계하는 눈빛 빠르다
한강 물소리가 하늘을 열어
천년의 침묵을 깬 것은
온 천하에 발설하고픈 역사서
안개 걷히는 나무마다
녹음한 말발굽 소리 틀어놓고
생각에 잠겨
중랑천과 왕숙천을 시선에 두고 있다
쓰러진 발끝 일으켜 세운 태양은
뜨고 지고 또 뜨고 지고
목마른 서책을 집필 중이다
빗방울이 눈물처럼 다녀가고
눈발이 그날의 발걸음 같은
보루군, 옛터는 적나라한 흉터였다



2 숲속 도서관
-아차산의 도서-

비 오는 날 해진 운동화를 신고
산 밑 도서관을 찾았다
신발에 스며든 빗방울이
꼼지락대는 발가락을 적신다
오늘은 우중충한 그늘이 끼었지만
내 자리는 햇살 찰랑대는 남쪽이다
책꽂이에서 책을 꺼내 읽는다
누군가 접어놓은 책갈피에
격전의 삼국시대가 꽂혀 있다
쓸모가 많을 것 같은 칼도 있었다
한 장 한 장 넘기는 역사는
아직 호흡이 멎지 않았다
매일 보루를 쓰다듬는 바람이
서사를 읊조린다
발굴한 다양한 유물을 놓고
다들 고구려를 추측했다
전설은 민담으로 전해지며
솔깃한 줄거리를
입에서 입으로 흘린다
성벽 같은 책꽂이에 수천 권의 책이
되새김질하는 소여물 같은 나뭇잎을
나무에서 훑어내어
활자를 각출해 먹고 있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 책
한 줄 글귀가 걸어나온다



3 피어나는 봄


고구려 역사길에
매화 백목련이 흐드러지고
수선화 산수유 개나리도
동시다발로 피어 도원결의에 나섰다
일파만파로 흩날리는 꽃잎들
산길에 향기로운 내음 퍼뜨리는데
꽃들의 꿀샘 콕콕 찍어
꿀맛을 보는 직박구리와 쇠 동고비의 봄이
승리와 패배의 격전지를 기웃거렸다
온달의 굳센 주먹 바위에도
평강공주의 눈물 젖은 통곡 바위에도
물이끼 새파랗게 돋아나는 봄이다
자신이 한 송이 꽃인 줄 모르고
한 세월을 껴안고 살아온 사람들이
봄을 건너는 동안
발길에 묻어나는 봄 향기가
천지에 가득하다
한강의 물살을 따라 떠도는
삶의 흔적들이 묵묵히 엮어온
다짐의 맹세로 암팡지게 발돋움한
고구려인 혈투에
곳곳에는 꽃샘바람 쓰러지고...
웃음 피어나는 꽃잎들이 활보하는
아차산 길목마다 봄이 끓는다


동상3_박봉철(부산)


1 아차산에 대한 소고


발끝이 다다르는 곳에
산줄기嶺의 탯줄을 따라가면
불거진 끝머리, 산 옆구리를 짚어내는
보루가 걸터앉는다
능선과 는개가 교접하며 선잠이 드는
볕 바라기 산맥의 향방은 알 수 없다

가쁜 숨 지친 산등성이의 체위가
함부로 어긋나며 술술 빠져드는 발치가 된다
미완未完의 여백과 대비하는 푸른 속살
산뽕나무 노린재나무 내비친 한강에
깊이 시름에 잠긴 주름이 정박했을까

구름옷 걸친 빽빽한 숲 향기에
금빛 햇살을 덧대야
기암 바위가 날숨을 갈앉아
너럭 쉼터를 내어준다

어쩌면 산바람에 내 안을 훑어가던 길의 목차
비린내를 펼쳐드는 강자락에
두레를 좇아 둘레길 가슴 둥지에
​부둥켜안은 솔숲 속에
시름 젖은 강 겨드랑이
몇 두레 되돌아가는, 낙조 여문 풍광
굽이굽이 들숨을 멈출 수 있을까​

탁 트인, 고구려 정을 켜 갑니다
아, 아차산은 늘 아차峨嵯다



2 아차산, 탁본


마음이 푸덕거리는 거처에
궤적을 긋는 초록의 숲들
온몸 그을린 맞배그늘 안고 쉬어가지요

어스름한 공간은 풍경의 배후에 호시탐탐 물러서서
바람과 새의 날개를 노리느라
안간힘으로 이파리의 셔터를 눌러보지요

깃털처럼 하늘을 향해 솟구친다는 느낌에
늘 흠뻑 젖어 바람을 엿들을 때마다
똬리 튼 구절 하나, 견디며 일어서는 것은
서로를 어깨 견주는 것이기에
천형인 양 오롯하게 속박을 지우고
햇살 내음으로 부화할 듯
두근두근 살져 날아오를, 형상形象이라는 아차산
몰래 굽은 능선을 외면한 시선은
겹겹 쌓인 풀비늘이었을까요

책갈피 걸친 어스름 행간 너머
우듬지에 걸쳐 있는 굽은 말씀에
몇몇, 공중의 탁본은 한없이 부풀어 오르는데
툭툭 발사하는 향기처럼 콧속 가득
고요를 바스락거리며
당찬 마디로 범람할까요

어느 잔가지 뻗어 마중인 듯
그늘로 짚어가는지
중천의 배후로 일필휘지
공중을 허우적대면
가지마다 꿈틀대는 숲 향내 쨍쨍 그을리는
아차산 어깨, 맹신盲信으로 엎질러져요


3 할미꽃
-아차산 생태공원에서-

볕뉘를 뒷짐 지듯
허리를 구부리고 있다
가장부터 멀어진 가장자리
세상의 바닥들을 편애하듯 회고하며
세월의 뒷면을 발굴한다
우주의 자궁을 되짚어보는 거일까
그림자의 기울기가
비끗대며 절룩거리는 사이
허리춤을 끌어올리는 할머니
굽은 울대를 나지막하게 꺼내다
넌지시 웅얼거린 채 배흘림 아래로
질퍽, 노을이 묻어나는 중이다
사흘 낮 향기 옆
푹 절은 지린내로
뒤척이는 여름은, 몇 생의 아랫도리
겹겹 두툼한 잎겨드랑이 소리가
그늘막처럼 바스락거린다
잔뿌리 여태 펴지 못하고
앓던, 무채색의 세월
덜 빠진 틀니 사이로
삐끗 경誙을 읽고 있을까

부르튼 새벽은 가랑이 사이로
한 움큼씩 몰려오고
모르는 척, 요실금이
옹색壅塞한 기슭에 도돌이표 길을 낸다



수상하신 작가님들에게 진심으로 축하인사 드립니다
축사_정성주시인_격려사 김용철시인_환영사 윤기영대표_수상자 총평김영미박사
_축하 시낭송 홍성례_사회 정설연_사진 윤두용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