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월봉(月峰) 윤덕(潤德)
(세조(世祖)3년)1457년~중종30년 1535[79세])
익헌공(翼憲公) 자(字)는 선경(善卿) 호(號)는 월봉(月峰)
어려서 부터 재주와 사고력이 출중 하시여, 성종8년 1477년에 생원시에 합격하시고, 1483년에 대과급제(大科及第) 하시였으며 연산(燕山)3년 1497년에 중시(重試)에 급제하여, 사간(司諫)과 동부승지(同副承旨)를 하시고, 경상,경기 관찰사와 형조참판(刑曺參判)을 역임 하셨다. 연산(燕山)10년 1504년에 갑자(甲子)사화에 연루 되시여 유배(流配)되었다가, 중종반정(中宗反正)으로 유배(流配)에서 풀리시여, 한성좌윤(漢城左尹)에 제수되고 원종공신(原從功臣)으로, 형조(刑曺) 공조(工曺) 참판을 역임하고, 병조참판(兵曺參判) 재임중, 삼포왜란(三浦倭亂)시 부원수(副元帥)로 출전 평정 하였으며, 평안도 관찰사 를 지내시고 도총관(都摠管)과 중추부사(中樞付事)를 지내셨으며, 중종16년 1521년 에는 공조판서(工曺判書) 1523년 에는 호조판서(戶曺判書) 1527년에는 우참찬(右參贊)과 좌참찬(左參贊)을 역임 하셨으며, 중종30년 1535년 9월 24일 79세로 돌아가시였다.
나라에서는 부음(訃音)이 전해지자 3일간 조회(朝會)를 폐하고
애도 하였으며 시호(諡號)를 익헌(翼憲)이라 내렸다.
3) 광양군(廣陽君) 황(滉)
(1549년 기유(己酉)11월 2일~1593년 계사(癸巳)7월 5일[45세])
자(字)는 경호(景浩)이시며 어려서부터 성품이 온화 하시고 재질이 영특 하시여 문장이 뛰여 나시였으며, 부모에게 효도함이 극진하여 누구도 따를자 없다 하였다. 아버님의 병환이 위중하실 때 단지하여 피를 입에 넣어드리고, 지성으로 간호 하였으나 백약이 무효로 돌아가시니, 초상중에 물이며 간장마저도 드시지 않아 상을 치르지 못할 지경 이였으며, 장례후 묘소 곁에 여막(廬幕)을 짓고 여막살이를 하시면서, 모친께서 성내(城內) 집에 홀로 외로히 계시니 때때로 어머님을 뵈옵고 바로 묘소로 돌아가곤 하시면서, 삼년간을 죽으로 연명 하면서 1589년 복을 벗으시였다.
선조대왕(宣祖大王)께서는 매부(妹夫)가 초시(初試)에 합격하자
기쁨을 표하시고, 상당한 지위의 벼슬을 특명하였으나 광양군은
사양하시고 학문에만 힘쓸 뿐 벼슬을 원치 않으셨다.
선조(宣祖)께서 주부(主簿)의 벼슬을 시키고, 통정(通政)의 직계(直階)를 내렸으나 사양하시다가, 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겸 내승(兼內乘)을 제수 받으셨다. 1492년 임진(壬辰) 4월 14일에 왜국(倭國)이 난을 일으켜 파죽지세로 북상하여, 도성이 함락될 위기에 이를 때 모든 신하들이 대왕께 파천(播遷)하기를 고하였으나 어찌 백성과 종묘(宗廟)를 버리고 도성(都城)을 버리랴, 고집하시고 듣지 않으니, 광양군께서 내전(內殿)에 들어가 간곡히 아뢰니 그때서야 상께서 명을 내려 파천행차를 서둘렀다. 광양군께서는 상의원정(尙衣院正)으로 내승(內乘)을 겸하여, 1592년4월30일 비를 맞으며 피난길에 올라 임진강에 이르니, 비속에 피로와 굶주림으로 많은 수행원이 도망가고 호종(扈從)하는 신하가 많지 않았으나 광양군께서는 시종일관 말고삐를 잡고 호종하시니 상께서 품계를 올려, 가선대부(嘉善大夫)를 삼노라 하였다. 광양군께서는 어가를 호종하며 상께서 침소에 들기 전에는 그 앞을 물러나지 않고, 새벽 밝기 전에 침소에 들어 시중들기를 하루도 거르지 않으니, 상께서 더욱 우애하고 그 충성을 칭찬하였다. 허약한 몸으로 충성을 다하여 받드니 더위에 피로를 이기지 못하시고, 건강에 무리가 생겨 환후(患候)로 병석에 누우신지 40여일만에, 강서행궁(江西行宮)에서 향년(享年) 45세로 1593년 계사(癸巳) 7월 5일에 훈사(勳死) 하시였다.
대왕께서는 매우 슬퍼하시고, 진충보국(盡忠報國)한 공덕(功德)을 추모(追慕) 하여 난이 끝난 후, 증(贈) 충근정량효절협책호성공신(忠勤貞亮效節協策扈聖功臣) 이등(二等)과 자헌대부 호조판서(資憲大夫戶曺判書)겸 지의금부사(兼知義禁府事)에 훈록(勳錄)하고, 광양군(廣陽君)에 봉군(封君)하고 대왕의 특명으로 강서로부터 광주 선영으로 예장(禮葬)케 하였으며, 광주 선영지를 사패지지(賜牌之地)로 하사하시고, 봉제사(奉祭祀)는 자손대대로 불천지위(不遷之位)로 하라는 교명(敎命)을 내리셨다.
불천위 제향
광양군 할아버지 (음) 7월 5일 오전11시 충양사
광양군 할 머 니 (음) 6월 27일 오전11시 충양사
임란공신 추모제 (음) 4월 13일 오전11시 충남 보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