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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현대시선 2009년 신인문학상 `대상` 박종석시인 심사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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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기영 2009. 10. 22.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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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선 2009년 신인문학상 '대상' 박종석시인 심사평  

 

 

박종석

거주지: 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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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風磬)

 

박종석

 

산 까치 우는 산사 처마

천 겹 쇠줄에 묶인 채로

기왓장처럼 정연한 비늘을 떨며

억 겁 세월 우거진 산야를 유영하는 너는

 

바람이 보이는 거울,

세월이 만든 거울에 비친

내 마음의 작은 소리를 먹고

먼 히말라야에서 날아와 토해내는

한고조(寒苦鳥)의 공명(共鳴)

 

일백여덟 개 시름의 깃을 털고

영원의 틈새를 갈라

 

여명이 꽃처럼 피어나는 동녘산 산사에

목탁예불 소리로 울고 있다.

 

 

* 한고조(寒苦鳥) - 인도 히말라야 산맥에 산다는 상상의 새

(게을러 도를 닦지 아니한 중생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심사평

 

 

더위가 한창이던 8월 26일, 현대시선 사무실로 잘 익은 젓갈

한 봉지가 배달되어 왔다. 신인작가 작품이라 나름 설익고 빠진

데가 있는 작품들이 올 것이라고 예상하던 심사위원들은

다소 놀라는 눈치였다. 잘 익은 젓갈이라고 표현한 것처럼

시를 숙성시킨 작가의 의식은 상당히 원숙한 것이었고, 표현력

또한 무르익을 데로 무르익어 있었다.

 

살아온 세월만큼 삶의 내공을 키워온 작가만이 내 놓을 수 있는

무게감과 깊이가 있었다. 서투른 언어의 유희가 끼어들 틈 없이

꽉 짜인 구도 속에, 삶의 비린내와 스러지지 않는 정신의 곧추섬이

잘 버무려져 있었다. 소금이 간이 맞게 생선에 잘 녹아들 때 젓갈이

감칠맛 나게 숙성되는 것처럼 작가는 자신의 감수성을 구도와

의식 속에 잘 녹여 넣어 시에 팔딱이는 생명력을 불어 넣고 있다.

 

응모작 ‘간재미 장수 어머니’에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어머니들의

거칠지만 따뜻한 삶이 배어든 손길을, “어머니의 광주리에 실오라기

하나 안 걸친 채 속살 하얗게 드러낸 간재미”와 남도가락 구성진

서해 어촌 장터 풍경을 통해 잘 무쳐낸 작가는 자식을 위해 기꺼이

희생되어온 한 여자의 삶을 무심히 놓쳐온 자신에 대한 회한을

‘꽃잎에 스며드는 새벽’에서 “벌래 먹어 슬픈 하현달”과 “기울어가는

달빛에 절인 소금 꽃”으로 절절히 표현하고 있다.

 

이제 삶이란 채워질 수 있는 것과 채울 수 없는 것들로 굴곡진 세상이라는

것을 완숙하게 바라보게 된 작가는 삶의 본질과 지향(指向)을 향한 구도에

들어간다.

 

당선작 풍경(風磬)에서 깨달음에 이르지 못하고 속세에서 영원히 윤회

하는 중생의 고단한 삶의 안타까움과 중생의 하나로서 고양(高揚)된

정신세계를 엿보자고 하는 작가의 의식을 표현하고 있다.

 

작가는 첫 연에서 “산 까치 우는 산사 처마에 천 겹 쇠줄에 묶인 채로”

바람이 흔드는 대로 (아픔을 겪으며) “기왓장처럼 정연한 비늘을 떨며”

하나의 소리가 되어 “억 겁을 우거진 산야에서 유영하는” 풍경의 모습을

통해서 삶(바람)에 흔들리며 세파를 겪고 또 그 흔들림을 통해 소리

(깨달음의 단초)를 얻게 되는 중생을 단정한 표현으로 잘 나타내고 있다.

 

삶을 통해 내 마음의 소리를 비춰 볼 수 있게 된 작가는

2연에서 한고조(寒苦鳥) - 한고조(寒苦鳥) - 인도 히말라야 산맥에 산다는 상상의 새

 (게을러 도를 닦지 아니한 중생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공명(共鳴)을 들을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해 삶과 깨달음의 본질을 자아(自我)의 차원을 넘어 전체

속에서 짚어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 백팔 배(拜)를 통해 즉, 수행을 통해 백팔 번뇌를 여의고 영원의

틈새를 가를 수 있게 된 (깨달음의 시작) 작가는 마침내 바람에 울리는

풍경 소리를 “여명이 꽃처럼 피어나는 동녘산 산사에 울리는 깨달음의

목탁예불 소리”로 들을 수 있게 된다.

 

요즘 같이 뛰어난 시란 감각적인 시어의 유희를 잘 구사해 낸 것이라고

치부되는 시기에 이처럼 서정적으로 아름다우면서 삶을 고즈넉이 들려다

보는 작가를 만나게 된다는 것은 뜻하지 않은 즐거움이다.

 

작가는 시인으로서 간을 잘 맞춘 젓갈과 같은 단계에 이른 것으로 보여,

앞으로 자신의 재능과 노력을 푹 삭혀 대성(大成)의 길로 나갈 수 있기를

기원하는 바이다.

                                    (심사위원-김영미 박호영 윤기영)

출처 : 현대시선 문예지
글쓴이 : 草談/윤기영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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